일본 왜장과 함께 투신한 충절여인 혼과 정신,
논개사당(의암사)
논개는 선조 7년(1574) 9월3일 지금의 전북 장수군 임내면 주촌부락에서
부친 주달문과 모친 밀양박씨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논개의 나이 방년 19세때 나라와 부군(夫君)의 원수 왜장 게야무라 로꾸스께를
껴안고 진주 남강에 투신 순절한 의암 주논개의 충절의 정신을 기리고자
논개생가를 복원 하였으며,장수읍 두산리에 의암사(義巖祠)라는 논개사당과
논개의 수명비(竪名碑)가 세워져 있다.
논개는 선조 26년(1593년) 임진왜란시 왜군이 진주성을 점령,
남편 최경회, 김천일, 고종후 장군 등이 남강에 투신하여 순절하자,
일본군이 진주성을 유린하고 수많은 양민을 학살하는 등의 만행을 저지른 것에
의분한 논개는 왜장들이 촉석루에서 벌인 주연에 기녀로 가장하고 참석하여
술에 만취한 왜장 게야무라 후미스케[毛谷村文助]를 껴안고 남강에
몸을 던져 함께 죽었다.
의암주논개사적비라고 부르며 장수논개수명지비라고도 부르기도 하는
이 비석은 논개(論介)가 생장(生長)한 고장을 나타내기 위하여 세워진 것으로
조선 헌종(憲宗) 12년(1864)에 장수현감(長水縣監) 정주석(鄭胄錫)이 세웠다고 한다.
일제(日帝) 말기(末期)에는 이 비석을 파괴하도록 하였으나 땅 속에 묻어 두었다.
광복 후에 발굴되어 의암사 입구의 도로변에 이건되었다가 논개사당(論介祠堂)
경내로 옮겨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비석의 크기는 높이 160cm, 폭60cm, 두께30cm으로
정면에는 '촉석의기논개생장향수명비(矗石義妓論介生長鄕竪名碑)'
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의암사는 지방기념물 제 46호로, 외삼문과 내삼문, 충의문이 차례로 있다.
▶ 내삼문인 휘광문
경내에는 "矗石義妓論介生長鄕竪名碑(촉석의기논개생장향수명비)"가 있고,
"의암사"라는 현판이 걸린 사당에는 논개의 영정이 있다.
▶ 논개 영정
진주 남강 논개가 떨어졌던 바위를 의암(義巖)이라 부른다.
▶ 논개사당 기념관,
기념관에는 논개의 유품과 남편 최경회 장군의 유품이 진열 되어 있습니다.
출생과 성장, 진주성 싸움, 재판받는 논개모녀, 최경회와의 만남등,
1955년 남산에 사당을 건립하여 의암사라 정하고 논개의 영정을 모셨으나,
1974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 왔으며, 의암사가 창건된 뒤에 장수군은
매년 9월9일을 택하여 논개제전을 열다가 1968년 부터는 이날을 장수군민의 날로
정하고 군민의 날 행사와 겸하여 논개대제를 지내고 있다.
여행정보: 전북 장수군 장수읍 두산리 산3
찾아가는길: 장수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의암사 논개사당까지는 도보 10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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