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과 백룡의 전설이 깃든 최대의 저수지 김제 벽골제
2012년 임진년 흑룡의 해를 맞아 용만 보면은 올해 좋은 기운을 받을까
한걸음에 달려가 본답니다...ㅎㅎㅎ
벽골제 원평천 용추에는 착한 백룡이 살고, 연포천 용추에는 심술 사나운
청룡이 살았다고 합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수리시설로, 용에게 목숨받쳐 제방을 지켰다는
단야낭자 설화와 쌍용의 다툼에서 백룡을 도와 가문이 융성했다는
조연벽장군 설화 등이 전해진다.
장생거(長生渠)
벽골제에는 제방길이 약 3km에 총 5개의 수문이 있었고, 수문의 명칭은
수여거, 장생거, 중심거, 경장거, 유통거라고 한다.
그중 현재 제방과 함께 남아있는 수문은 두 개소로 단지 내 장생거와 단지 밖
벽골제 제방을 따라 남쪽으로 2km에 위치한 경장거이다.
1980년대 수문 일부 복원 공사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벽골지문
[삼국사기] 신라본기 흘해왕 21년(330)의 기록(始開碧骨池 岸長一千八百步, 처음
벽골지를 여니 제방의 길이가 일천팔백보이다)에 벽골제를 축조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330년은 이 지역이 백제 영토로 추정되므로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오기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벽골제 축조시기는 백제 11대 비류왕 27년(330)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통일신라
원성왕 6년(790)과 고려 현종 및 인종 때 고쳐 쌓은 후 조선 태종 25년(1415)에 다시 쌓았으나
세종 2년(1420)에 심한 폭우로 유실되었다.
이후 1925년 동진농지개량조합에서 이 제방을 관개용 수로로 개조함으로써 그 원형이 크게
훼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장터가 열리는곳이지 않나 싶은데 겨울철 추운 날씨에
초가 지붕엔 눈만이 쌓였더군요.
벽골제 제방에 올라서 바라본 관개수로는 끝이 어디인지
보이지 않았으며 뒤로 넓은 평야만이 고요히 닥아왔다.
김제시가 내놓은 ‘임진년의 용, 벽골제 쌍용,
벽골제 설화를 극화한 15m 높이의 쌍룡상이 설치돼었다.
김제시가 만든 백룡상과 정부가 4년여 전 서울 용산공원의 것을
해체해 옮긴 청룡상(용오름)이 만나 쌍용설화는 재탄생 하였다.
해질녘 역광을 받으면 흑룡상으로 변한다는데
여행자는 그시각까지 기다릴수가 없었습니다.
날씨는 그다지 춥지는 않았지만 제방에 서니 찬바람이
온몸을 스치며 갈대를 흔들고 지납니다.
벽골제 중수비
중수비(重修碑)에, “군의 남쪽 15리쯤 큰 둑이 있는데, 그 이름은 벽골(碧骨)이다.
둑의 길이는 6만 8백 43자이고, 둑 안의 둘레는 7만 7천 4백 6보이다.
다섯 개의 도랑을 파서 논에 물을 대는데, 논은 무릇 9천 8백 40결(結) 95 복(卜)이라
하니, 고적(古籍)에 적혀 있다.
장생거의 모습으로 수문의 개폐를 체험할 수 있도록
체험장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월촌입석(전라북도 민속문화재 제7호)
입석은 마을의 입구에 세워져 재앙을 막아주는 수문신이자, 마을의 풍농과 평안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입석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보름날 남녀편으로
나뉘어 '줄다리기'를 하는데 여자편이 이겨야 그해 풍년이 든다고 믿고 있다.
줄다리기가 여자편의 승리로 끝나면 사용한 동아줄을 입석에 감아두고 고을의
풍농과 안전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올린다.
이 입석은 사각기둥형 자연석이며 높이는 210cm, 폭 62cm, 두께 40cm이다.
단야각
단야루
신라 제38대 원성왕 때 김제 태수가 토목기술자인 원덕랑과 자신의 딸 단야를 맺어주기 위해
원덕랑의 약혼녀를 용의 제물로 바치려 하였다. 그러나 이를 안 단야는 스스로 용의
제물이 되었으며 이러한 단야의 효심과 희생정신의 뜻을 기리기 위해 이곳에 단야각과
단야루를 세웠으며 영정도 모시게 되었다.
벽골제농경문화박물관
농경문화박물관은 1993년에 착공하여 1997년 준공되었으며 1998년 4.21 개관하였다.
박물관은 3개의 상설전시실(농경전시실, 생활민속실, 벽골제언실)과 1개의 기획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적 벽골제와 농경문화의 전통을 발굴, 전시, 연구, 보전하는
교육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전통농경사회 최대의 생업이자 온 문화를 떠받치는 물질적 기반이었던
농경의 역사, 농경도구, 농경사회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실,
예전 배가 아플때 엄마손은 약손~ 하면서 따뜻하게
배를 문질러 주시던 옛 생각이 떠오르는군요.
농경을 통해 풍요로운 생산이 보장되고, 일상에서 농경을 통한
의생활, 식생활, 세시풍속, 민간신앙에 대한 전시관,
소테마공원으로 작품 총14점이 전시되어 있어
시골에 살아보지 못한 여행자에게 큰 볼거리를 제공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쌓아 만든 옛 저수지의 중수비와 둑으로
벽골제는 우리나라 최고, 최대의 저수지로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에서
월승리에 걸쳐 약 3km에 이르는 제방이 현존하고 있으며 광범위한
고대 농경사 및 문화, 토목건축적 의의를 인정받고 있다.
여행정보: 전북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 (벽골제로442번지)
홈페이지: http://byeokgolje.gimje.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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