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 정철이 지은 관동팔경중에서도 제일경의 자리를 차지한
오십천변에서 바라본 '죽서루'
햇살도 좋고 푸른하늘에 두둥실 떠다니는 하얀 구름아래,
높다란 절벽위에 보이는 죽서루를
만나기 위해 강아래로 내려가 보았다.
누(樓)란 사방을 트고 마루를 한층 높여 지은 다락형식의 집을 일컫는 말이며,
누각 동쪽에 대나무 숲이 있었고 '죽서'란 이름은 누의
동쪽으로 죽장사라는 절과 이름난
기생 죽죽선녀의 집이 있어 ‘죽서루’라 하였다고 한다.
규모는 앞면 7칸·옆면 2칸이지만 원래 앞면이 5칸이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도 천장의 구조로 보아 원래 다른 형태의 지붕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지만 재료 형태는 다른 양식을 응용한 부분이 있다.
또한 기둥을 자연암반의 높이에 맞춰 직접 세운 점도 특이하다.
기단과 초석없이 두리기둥 밑면을 그렝이질하여 자연암반 위에 직접 세운 것입니다.
누각 바닥은 우물마루이고 천장은 연꽃으로 수놓은 연등천장이며,
우물마루가 끝나는 사면에는 계자난간을 세우고,
기둥 사이는 벽체나 창호없이 모두 개방했습니다.
노오란 유채꽃들이 오십천 층암절벽 위에 죽서루의 분위를 짐작캐 한다.
죽서루 누각을 둘러보고 꼭 보고 갈것이 있다고 해서 계단 아래로 내려왔다.
누각 옆으로 돌아가니 오밀조밀 층층의 바위가 있다.
용문바위 ,
아들을 낳기위해 치성을 드리고 간 흔적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조금 희미하여 빨간 표시로 그려 보았는데,
10개의 구멍이라고 하지만 난 다 찾지를 못하겠다.
죽서루 선사 암각화는 바위위에 여성 생식기모양의 구멍을
뚫어놓은 성혈 암각이다.
성혈은 선사시대 풍요, 생산, 다산을 상징하는것으로
원시 신앙의 형태로 발전하여 조선시대에는 칠월칠석날 자정에
부녀자들이 성혈터를 찾아가서 일곱 구멍에 좁쌀을 담아놓고
치성을 드린다음 그 좁쌀을 한지에 싸서 치마폭에 감추어 가면
아들을 낳는다는 민간 신앙이 성행했다.
이 누각의 창건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려때 학자인 이승휴가 고려 원종 7년(1266)
서루에 올라 시를 남겼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선 태종3년(1403) 삼척부사 김효손이 중창한 이래 10여 차례의
중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이 누의 남쪽에는 별관인 연근당 등이 있었다 한다.
처마는 겹치마이고, 지붕은 팔작지붕인 죽서루는 정면 7칸으로,
장방형 평면을 이루고 있지만 본래는 정면 5칸, 측면 2칸이었다고 합니다.
죽서루는 객사(동헌)의 부속건물로서 접대와 휴식을 주목적으로 하는
"향연을 위한 누각"이다.
죽서루는 "관동 제1루"라는 명성에 걸맞게 누각에 서서 바라보는 경관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무언가 썰렁한 느낌이 , 사람들의 발걸음이 별로 없는듯 하였다.
배용준(김인수역) , 손예진(한서영역)이 출연한 영화 외출이
이곳에서도 촬영되었다고 하네요.
이 누각에는 율곡 이이 선생을 비롯한 여러 유명한 학자들의 글이 걸려 있다.
그 중 ‘제일계정(第一溪亭)’은 현종 3년(1662)에 허목이 쓴 것이고,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는 숙종 37년(1711)에 이성조가 썼으며
‘해선유희지소(海仙遊戱之所)’는 헌종 3년(1837)에 이규헌이 쓴 것이다.
길안내: 강원 삼척시 성내동 , 033-570-3670
관련홈페이지: http://tour.samcheok.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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