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의 꽃소식과 함께 떠난 동양의 나폴리 통영.
통영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을 기리기 위해
통영국제음악제가 개막돼었다.
시인 윤기현의 아들로 17세 때 일본에 유학하여 첼로·음악이론·작곡 등을 배웠다.
무장독립운동을 하려다가 체포되었고 8·15해방 후 고아들을 보살피기도 했다.
1948년 통영여자고등학교에서 음악교사로 활동했었다.
윤이상선생님이 사용했던 첼로.
약 80억원이 투입된 기념공원은 야외공연이 가능한
음악광장과 관객 1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프린지홀,
윤이상선생님의 유품 전시실 등으로 구성돼었다.
라디오 방송관현악단에 의해 초연되었다.
북한에서 반입한 흉상은 원본은 북한에 있으며,
이곳에 들여온건 복제한것이다,
생활 물품, 악기와 친필 악보 원본등 400여 점의
자료들이 기념관을 메우고 있었다.
재현해 놓은 소박한 작업실,
윤이상의 음악은 서양음악에 동양적인 요소를 쓴
독자적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도교와 불교를 소재로 하고 있는 것이 많지만, 성경의 글을
가사로 한 곡도 있다.
윤이상은 생애 대부분을 기독교 신자로 보냈고,
말년에 불교에 귀의하였다.
3월19일 개관된 전시실에 유품148종 421점을 가족으로부터
인수 하였다고 한다.
윤이상선생님의 바이올린,
'현존하는 유럽의 5대작곡가'로 꼽혔으며,
독일연방공화국대공로훈장, 괴테메달 등을 받았다.
통영시는 윤이상의 생가 주변 일대에 도천테마파크,
윤이상 기념공원을 건립 하였다.
미리 가 본 격식없이 즐기는 프린지공연 뜨겁게 달군다.
1963년 북한을 방문했고 1965년 서독 하노버에서
〈오 연꽃 속의 진주여!〉를 초연했다.
1967년 동베를린 간첩단사건으로 한국 중앙정보부는 그를 임의동행형식으로
귀국시켰으며 재판결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1968, 1969년의 2번에 걸쳐 10년이 감형되었다가 동료음악가·교수들의
국제적 항의와 독일정부의 도움으로 석방되었다.
감옥에서도 오페라 〈나비의 미망인〉(1967)을 작곡하고 그밖에
〈율〉·〈영상〉 등을 작곡했다.
1971년 서독 킬 문화상을 수상했고 독일국적도 취득했다.
1971년 8월 뮌헨 올림픽의 문화행사로 오페라 〈심청〉을
초연했고 1973에는 미국 애스펜 음악제에 작품을 발표했다.
늘 고국을 그리워했던 그는 복권이 이루어진 1994년 9월
한국에서 열린 윤이상음악축제에 참석하려 했지만,
한국정부와의 갈등으로 끝내 귀국하지 못했다.
가족들에게 쓴 편지, 1995년 독일베를린에서 폐렴으로 사망하였다.
어린시절에 사용했던 물건들, 모두 조그만 요강에 의아함을...
독일로 가져 갔었다는 반다지.
휘드러지게 꽃망울을 터트린 매화향기를 따라
통영으로 떠나 보았다.
길안내: 도천테마파크, 윤이상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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