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시 운봉읍에 있는 황산대첩비는 고려말 황산대첩의 승리를 기념하여 세운 비로
이성계가 왜구와 싸워 대승을 거둔 장소입니다.
주차장에서 차를 내리면 동편제 마을 방문자센터가 있고 그 앞 다리를 건너면
왼쪽에 바로 황산대첩비가 보인다.
시원스럽게 보이는 황산대첩 풍경이 계절에 따라 다르게 노랗게 익어가는
논두렁 벼를 상상하게 만드는군요.
전북 태조 이성계 역사탐방 길에 만나는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삼문
황산대첩비지 정문격인 삼문으로 들어서면 정면 중앙에 황산대첩비가 있고,
오른쪽으로는 파비각으로 본래의 파괴된 황산대첩비를 수습하여 보관하고 있으며,
왼쪽 계단위로 보이는것은 황산대첩사적비가 보입니다.
황산대첩비각(荒山大捷碑閣)
고려 우왕 6년(1380년) 왜구들이 진포로 쳐들어와 최무선 장군이 500여척의
배를 불태우고 승리한것이 진포대첩이며, 외구들이 남원 운봉에서 약탈을 일삼자
토벌 작전에 이성계가 활을 쏘아 적장 아지발도의 투구를 떨어뜨리고,
우왕좌왕하는 왜구를 섬멸 하였다고 해요.
3천 남짓의 병력으로 1만명이 넘는 왜구를 섬멸하였던 황산대첩,
바로 이성계의 황산 전투 대승이다.
황산대첩비(荒山大捷碑)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고려 우왕 때(1380년)에 이곳 황산에서 왜구를 크게 무찌른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선조 10년(1577년) 왕명을 받아 황산대첩비를 건립하였으며,
1577년(선조 10)작. 높이 4.25m. 이 비는 일제 때 일본인들에 의하여 파괴되어 파편만 남아 있는
정도였으나 1957년에 귀부(龜趺)와 이수(螭首)를 그대로 원형과 똑같은 비를
다시 만들어 세운 것이라고 합니다.
파비각(破碑閣)
원래의 荒山大捷碑(황산대첩비)는 일제가 글씨를 정으로 긁어 읽지 못하도록 만들고
파괴하였기에 남아있는 조각들을 모아 파비각안에 보관해 놓은것이라고 해요.
황산대첩사적비각
사적비각은 1882년(고종19) 운봉 현감 이두현이 세웠던 화수산 비각비가 훼손되자
1958년에 중건한 비입니다.
비가 개이니 뭉개뭉개 하얀 안개가 황산을 뒤덮고 있네요.
남원 황산대첩비지가 있는 남원시 인원면 황산(荒山)이예요.
전북 태조 이성계 역사탐방 왜구를 물리치고 고려를 구한 이성계는
황산대첩을 치룬지 12년후 1392년 7월17일 조선을 건국하고 태조에 등극하였다.
어휘각
대첩비지 입구에서 약간떨어진 산기슭 모서리에 있는 어휘각은 운봉읍 화수리
석벽(石壁)에 도원수가 본인과 8원수 4종사의 명단을 새기게 하여
황산대첩이 자신만의 공로가 아니라 여러 충신들의 공로임을 알리는 내용의
어휘(御諱)를 새겨 만든 비전(碑殿)입니다.
어휘의 글씨도 일제가 훼손하여 읽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간간히 내리던 이슬비가 멎으면서 초록초록 풀잎에 예쁜 물방울 구슬을
엮어 놓았습니다.
달개비꽃이 한층 더 싱그러워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네요.
람천의 피바위가 전사한 왜구들의 피로 붉게 물들어 7일간 물을 먹을수가
없었다고 전해지는데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졌습니다.
태조 이성계 역사탐방을 하면서 새로운 사실과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남원 가볼만한곳이었습니다.
“상기 포스팅은 태조 이성계 역사탐방을 알리기 위하여 전라북도에서
초청하여 진행한 공공 팸투어에 참가 한 후 후기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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