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송의일상/해피송 자원봉사

노원구 문화재 답사 (박물관대학)

해피송702 2009. 7. 21. 13:50

           답사코스: 초안산 내시묘및 조선시대분묘군- 각심재-  초안산 비석거리 -

          청백리공 이명신도비및 묘역- 이윤탁 한글 영비 등- 벽진이씨충숙공- 노원역터

 

   노원구 박물관대학에서 역사속 인물을 찿아, 서울여대 박물관장님 그리고 노원구 문화재

   자문위원회 위원장님을 비롯 강의를 듣는 수강생들이 답사길을 나섰다.

 

   초안산 내시묘 (승극철 부부묘) 및 초안산 조선시대 분묘군 (사적 제440호)

   지정년원일: 2002년 3월9일, 시대: 조선시대, 양식: 묘, 석상, 석물등

   초안산 조선시대 분묘군은 최근에 사적으로 지정된 유적이다.

  특히 이곳은 내시묘로 추정되는 다수의 분묘군이 분포되어 세간의 관심을 모은바 있다.

 

   조선시대 궁중 업무를 관장했던 내시들이 많이 묻힌 곳이라는 의미로 "내시네 산" 이라고도 불리었다.

  일제강점기까지도 매년 가을에 마을에서 내시들을 위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내시묘의 특징 중의 하나는 묘의 방향이 궁궐쪽인 서쪽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살아 있을때와 마찬가지로, 죽어서도 궁궐을 바라보며, 왕의 안녕을 기원 하였던것이다.

 

 내시묘 둘레에 가져다 놓은 돌이 있었다.

누군가 무슨 이유로 가져다 놓았는지 그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전날 비가 왔음에도 통안이 깨끗하게 정리가 돼어 있었고, 난 무척 궁금하여 이사람 저사람에게 묻는다...

 

 월계동 각심재 (서울시 민속자료 제16호) 는 예안이씨가에서 재실로 사용하고 있는 한옥 건물이다.

 원래 종로구 경운동 66번지 1호 천도교 수운회관 남쪽 민익두가옥 (서울시 민속자료 제15호)에

위치 하였는데, 도로 개설로 헐리게 되자 소유주가 예안이씨 종중회에 기증함으로써

1994년 3월18일 예안이씨묘역 위치로 이전 하였다.

 

                                                                 정간공 이명 묘역

                          며칠간 나리던 비가 오늘도 온다는 예보와 달리, 따사로운 햇볕과

                          시원한 바람이 뺨을 간지르고 간다.

                         송송 흐르는 구슬땀이 부끄러운지 어느새 메말라 버린다.

   

                               버스로 이동하며 잠깐씩 걷고, 설명을 듣고~ 100여명이 가까운 인원이

                               이동하다 보니 약간은 피로가 몰려온다.

 

   빨알간 산딸기가 눈에 들어왔다.

  ㅎㅎㅎ 약방에 감초처럼 새콤달콤한 맛이 생각과 혀를 자극한다.

 

     초안산 비석거리 전시된 석물은 조선시대 분묘군 인근과 노원구 관내 곳곳에 방치돼어 있던

     문화 유산적 가치가 있는 석물을 모아 전시한것 이다.

 

                                 문인석(복두공복), 문인석(금관조복), 망주석, 동자상, 상석, 비석

 

 

 

                                    위에서부터 혼유석, 상석, 향로석 순으로 돼어 있다.

 

                                            불을 밝혀 놓는 작명등

 

             벽진이씨 충숙(부조)공 묘역  문화재 제 69호,70호.

묘역은 병자호란때 강도사직(江都社稷)을 수호하다 순절한 충신 이공 휘 상길과 선고(先考)인

찬선공 휘 희선(1530~1592) 그리고 배씨 평사공 휘상철(1552~1594)의 묘소가 있는 곳이다.

공의 호는 동천이요 시호는 충숙이고 관(貫)은 벽진(碧珍)이니

시조(始祖)는 고려삼중대광개국 원훈 벽진장군 휘총언인데 공이 22세 손이며 청백리로 청사(靑史)에

빛나는 평정공 휘약동의 5대손이다.

 

 공은 명종11년(1556)병진 12월 3일 자시에 한양 주자방에서 태어나고 선조 18년(1585) 을유 9월에

식년문과 갑과에 제2등으로 백씨인 평사공 휘상철과 함께 급제하였다.

공의 관직은 자현대부 공조판서에 이르렀고 대광보국, 승록대부, 의정부, 좌의정 겸 영

경연감춘추관사에 증직(贈職)되었다.

공이 인조15년(1637) 정축 1월26일 사생취의(捨生取義)하여 묘사(廟社)를 수호하다가 순절하니

향수 82세에 영에의 생을 마쳤다.

2월에 선원촌에 권장(權葬)하였다가 그해 4월에 이곳으로 반장(返葬)되었으며 부조의 명을 받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예손들이 봉향(奉享)하고 있다.

 

 

충숙이공(忠肅李公) 신도비(神道碑)는 조선 인종때 좌의정을 지낸 이상길(1556~1637)의 신도비로서

현종2년(1661)에 건립되었다.

충숙이공은 명종11년(1556)에 태어나 30세에문과에 급제한 후 예조참판, 병조참판, 대사간, 대사헌을 거쳐

공조판서를 역임하였으며 인조 15년(1637)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군대의 침입에 항거하여

강화도에서 종묘를 지키다 82세에 순절한 충신으로 효종8년(1657)사시(賜諡)되었다.

충숙공 신도비는 당대 명문인 성균관 제주(祭酒) 송시열이 짓고 성균관 제주(祭酒) 송준길이 글을 썼다.

이 신도비는 총높이 3,16m, 비신높이 2,19m, 폭 0,89m의 규모로서 화강석으로 되어있다.

 

   마지막 답사길에 기념샷~ 한장

 이윤탁 한글 영비(李允濯 한글 靈碑)  : 보물  제1524호

이 비석은 묵재(黙齋) 이문건(李文楗)이 부친인 이윤탁(李允濯)의 묘를

모친인 고령(高靈) 신씨(申氏)의 묘와 합장하면서 1536년에 묘 앞에 세운 묘비이다.

이 묘비에는 앞면과 뒷면에 각각 묘주의 이름과 그 일대기가 새겨져 있고,

왼쪽과 오른쪽에도 한글과 한문으로 경계문이 새겨져 있다.

 

 

이 비석의 특징적 가치는 비석 왼쪽 면에 쓰여진 한글 경고문인데,

우리나라 비문으로서는 한글로 쓰인 최초의 묘비문으로 알려져 있어 그 역사적 가치가 높으며

국어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울집 가까이에 노원역터 기록이 남아 있는줄을 몰랐다.                                                                                          

오늘 비로소 이곳에 와보니 넘 웃으어 모두들 헛 웃음밖에...                                                        

왜냐하면 조금만 판에 보이지도 않는곳에 붙어 있었기 때문~                                                       

  누가 벽에 조금만 공고라고 생각하지 옛터 자리라고 생각 하겠나...                                                  

마지막 옛터를 보며 한바탕 웃고나니, 조금은 피로가 풀리는듯 하다.                                                

   글과사진: 여행사진기자 해피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