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4월30일, 서산시 해미면에 소재한 조선시대의 읍성.
( 진남문) 남편과 친구들과 함께 안면도 꽃박람회에 다녀오는길에 해미읍성을 들렀다.
천주교 박해를 증거하는 듯 서있는 호야나무- 당시 천주교 신자들을 고문했던 성내의 호야나무
(회화나무)는 그때의 기억을 증거하고 있는듯 홀로 버티고 서 있다.
관아에 들어선 친구들~ ㅎㅎㅎ 누굴 곤장을 치려구?.....
사적 제116호. 해미는 1414년(태종 14)에 충청도 덕산(德山)으로부터 충청도병마절도사영(忠淸道兵馬節度使營)
이 옮겨온 곳으로, 충청도병마절도사영이 청주로 이전한 1651년(효종 2)까지 군사적 거점이 되었던 곳이다.
해미읍성은 1491년(성종 22)에 축조되어 서해안 방어를 맡았던 곳이다.
울 옆지기 오늘은 여행가이드와 카메라맨으로 나섰다. 나와 친구들 여행 길잡이에서 부터, 기념촬영까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성의 둘레가 3,172척, 높이가 15척, 성 안에는 3개의 유물과 군창이 설치되어
있다고 되어 있다.
ㅎㅎㅎ 복자는 유적지에~ 정자는 유채밭에~ 난 포즈를 ~
1960년에 이 성을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읍성의 표본으로 삼아 사적으로 지정하고 보수공사를 하는 한편,
성 안팎에 무질서하게 자리잡은 민가를 철거·이전시키고 종합적인 보존계획을 세웠다. 1974년에 동문·서문이
복원되었으며 1981년에는 성 안의 일부를 발굴한 결과 관아 터가 확인되었다.
해발 130m인 북동쪽의 낮은 구릉에 넓은 평지를 포용하여 축조된 성으로서, 성벽의 아랫부분은 큰 석재를
사용하고 위로 오를수록 크기가 작은 석재를 사용하여 쌓았다. 성벽의 높이는 4.9m로서 안쪽은 흙으로 내탁
되었으며 성벽 상부 폭은 2.1m 정도이다. 성문은 동·서·남·북 4곳에 있는데 네모지게 잘 다듬은 무사석
(武砂石)으로 쌓았으며, 주 출입구인 남문은 아치모양의 홍예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호서우영 정문
관아에서 친구들과 한컷~ 기념을 남긴다.
이 읍성에는 동헌을 비롯하여 아사(衙舍) 및 작청(作廳) 등의 건물들이 빼곡히 있었으며, 천주교 박해와
관련된 유적도 일부 남아 있다. 1974년에 동문·서문이 복원되었고, 1981년 성내 일부를 발굴한 결과 현재의
동헌 서쪽에서 객사와, 현재의 아문 서쪽 30m 지점에서 옛 아문지가 확인되었고, 관아외곽석장기지
(官衙外廓石牆基址)가 발견되었다. 성의 둘레에는 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탱자나무를 돌려 심어서
탱자성이라는 별칭이 있었다.
노란 유채꽃밭에 친구 정자~ 꽃보다 더 아름다운 너~
임진왜란 전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군관으로 근무하였던 곳이기도 하며 격동의 근대사에서는
1천여 명의 천주교인들이 죽음으로 믿음을 지켜낸 전국 최대의 순교성지로도 유명하다.
옆지기와 친구들, 성벽위를 따라 걸어서 한바퀴 돌아 보았다.
옛생각을 도리켜 널뛰기를 해보는 친구들, 하지만 예전의 몸과는 달리???
다음 행선지로 이동하기위해 또 다시 발길을 돌렸다.
찿아가는길- ** 서해안고속도로 해미I.C→해미→해미읍성
** 경부고속도로 천안I.C→아산→예산→덕산→해미→해미읍성
** 서산공용버스터미널에서 해미행 시내/시외버스 이용 (10~15분간격 운행되며 15~20분이 소요된다)